마이클 펠프스는 수영의 전설로, 현대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입니다. 그는 아테네, 베이징, 런던, 리우 올림픽에서 총 28개의 메달을 따내며 수영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며, 그가 어떻게 이룬 성취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마이클 펠프스의 어린 시절
마이클 펠프스는 1985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경찰관인 아버지와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7살 위의 힐러리와 5살 위의 휘트니 두 누나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그는 싱글맘인 어머니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큰 누나는 대학교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작은 누나는 14세에 미국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정도로 엘리트 체육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펠프스가 처음 수영을 배울 때는 누나들의 '동생'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는 6살 때부터 노스볼티모어 수영클럽(North Baltimore Aquatic Club)에 다녔습니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땐 얼굴을 물에 담그는 것이 두려워 배영부터 배웠다고 합니다. 이 나이에 그는 수영뿐만 아니라 ADHD로 인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야구, 농구, 라크로스, 미식축구 등 다양한 운동을 시도했습니다.
수영 선수로서의 첫 발걸음
마이클 펠프스의 본격적인 선수 생활은 9살 때 코치 밥 보먼을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보먼 코치는 선수 시절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일찍 은퇴한 후,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아동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명코치로 이름을 떨치려던 중, 키우던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자 배신을 당해 수영계를 떠났습니다. 이후 볼티모어 주변 학교에서 농장경영학을 배우며 말(馬)을 키우려 했고, 남는 시간에 노스볼티모어 수영클럽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펠프스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보먼의 실력을 알아본 총코치가 정규직 제안을 하자, 그는 펠프스 전담 코치로서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20여 년 동안 항상 화목하지는 않았습니다. 펠프스가 대들고 싸우기도 하며 몇 번이나 깨질 위기가 있었지만, 그들은 이를 잘 극복해 나갔습니다.
보먼 코치는 자존심과 승부욕이 강한 펠프스를 다루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고, 펠프스는 “그는 완벽주의자고, 나는 솔직히 얼간이다”라고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보먼이 미시간 대학의 코치로 영입되자, 펠프스도 미시간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그들은 수영 선수 경력 내내 티격태격하며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펠프스가 은퇴 번복을 선언했을 때, 보먼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코치로 함께 올림픽을 준비했습니다. 이후 밥 보먼은 미국 수영 대표팀의 총감독으로 선출되어, 펠프스의 은퇴 경기까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3개월 전에 펠프스의 아들 부머 로버트 펠프스가 태어났는데, 이 '로버트'라는 이름은 밥 보먼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펠프스는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이 이름을 지었고, 보먼은 이를 듣고 매우 감격했다고 합니다. 사제 간의 깊은 정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본격적인 두각
어릴 때부터 대회란 대회는 모조리 휩쓸었고 12세 때 서너 살 많은 선수들이랑 같이 연습했다고 한다. 애초에 보먼이 주목한 점이 펠프스의 똘끼 가득인 멘털과 나이에 비해 큰 체구라서 선수로 대성할 만한 싹수라고 여기고 전담코치를 맡았는데 예상보다 더 두각이 빨리 나타났다. 대회를 휩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제 나이 대 주니어 기록이란 기록은 밥 먹듯이 깨고 다녔다. 심지어 자기 나이보다 더 많은 주니어 기록까지 깼다. 보먼 코치는 펠프스의 어머니 데비 펠프스에게 '마이클은 이제 올림픽을 준비해야 된다'라고 선언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미국 대표로 15세에 약 100년 만에 최연소 선수로 발탁되었으나 접영 200m 결선 5위에 그쳤다. 그러나 2001 세계선수권에서 최연소(만 15세 9개월)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프로로 전향하였다. 이미 이때부터 접영에선 먼치킨으로 알려져서 일반인 상대 강습 비디오도 찍을 정도라고 한다. 고교시절엔 올림픽 준비로 학업을 1년 꿇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로도 기량이 점점 일취월장해서 접영에서 개인혼영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각종대회에서 금메달을 '밥 먹듯이' 땄는데 2003 세계선수권에서도 금 4 은 2의 기록을 냈고 올림픽 대표로 무려 8 종목(개인종목 5개, 단체종목 3개)의 국가대표로 뽑혔다.
참고로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선 종목당 한 나라에서 선수 두 명까지만 출전이 가능한데 수영 최강국인 미국에서 한 종목에서 국대로 뽑혀도 세계정상급인데 하물며 한국에서 양궁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할 때 난이도가 세계대회 메달권보다 어렵다고 하듯이 수영 종목에서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에서 뽑히는 건 매우 어렵다.
이때 8 종목을 보면 자유형 200m, 접영 100m&200m, 개인혼영 200m&400m, 혼계영 4x100m, 계영 4x100m&4x200m의 출전권을 따냈는데 개인종목서 원래 하던 영법인 접영과 개인혼영에서 자유형에 새로 도전한 이유가 ‘이안 소프와 겨루고 싶어서’라고. 원래 메달 가능성은 배영 200m였는데 메달 가능성보다 승부를 택했다. 실은 배영 200미터까지 총 9 종목의 출전권을 땄고 최종적으로 일정상 자유형 200m와 배영 200m 둘 다 나가는 방법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일정상의 어려움으로 한 종목을 택하는 선택에서 자유형 200m를 선택한다. 결과는 자유형 200m에서 동메달, 계영 종목에서 동료의 실수로 하나의 동메달을 추가하고 이어지는 나머지 6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아테네 때 나온 8 종목에서 그대로 다시 나와 금메달 8개를 획득했다. 그것도 세계 신기록 7개와 올림픽 신기록 1개로 말이다. 참고로 동하계 올림픽 합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8개 이상 딴 선수는 6명에 불과하지만, 그 선수들은 3,4번의 올림픽을 출전한 데에 비해 펠프스는 단 한 대회에서 금메달 8개를 쓸어 담았다. 1972 뮌헨 올림픽에서 7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마크 스피츠의 기록을 36년 만에 갈아 치운 것이다.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과 함께 행운까지 따라주며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무후무한 올림픽 8관왕을 달성. 당시 17일 12시 30분, 1위를 중국, 2위를 미국, 3위를 독일, 4위를 호주, 5위를 마이클 펠프스라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저기에서 출발한 순위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대회에서의 금메달 8개가 상상이 잘 안 된다면, 대회 시작부터 19일까지 한국이 딴 전체 금메달 개수만큼 펠프스 혼자서 쓸어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8관왕을 달성하면서 세계 신기록 7개와 올림픽 신기록 1개까지 갱신했다. 한 대회에서 8관왕을 하는 것은 앞으로도 쉽게 나오지 못할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2011년
2009 세계선수권과 2011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했지만 동기부여가 잘 될 리도 없고 일부 종목은 출전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2009년에는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고, 2011년에는 금 4, 은 2, 동 1개를 획득했다.
펠프스 본인은 2011년 세계선수권 대회 시작 전 인터뷰에서 원래 페이스를 회복했다고 말했으나, 여전히 컨디션은 안 좋다는 평이다. 결국 런던 올림픽 때도 8관왕에 도전하느냐로 고민하다가 자유형 200m는 포기하고 7개 종목만 나가기로 결정했으며 밥 보먼 코치도 이러한 결정을 지지해 줬다.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기대치에 비해서는 부진한 성적으로 런던 올림픽을 마감했다. 올림픽을 마치고 만 27세에 더 이상 이룰 게 없다는 이유로 은퇴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그런데 2014년 4월,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복귀를 선언했다. 그 이후, 4차, 5차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 특히 5차 그랑프리 100m 접영에서 52.13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9월, 음주운전 혐의로 6개월 자격정지를 당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6개 종목에 출전하였다. 최종적으로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를 따냈으며, 은퇴선언 전인 런던 올림픽보다도 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남자 200m 개인혼영은 대회 4연패라는 기록까지 추가했고, 덤으로 단체전인 혼계영 400m, 계영 800m에서도 4연패를 기록했다.
혼계영 경기가 끝나고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예정대로 은퇴선언을 또 발표했다. 앞으로는 인명 구조를 위해 자신의 수영을 활용하고 싶고 아들과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고 하며 기자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펠프스의 나이는 32세로 수영 선수로서 매우 노장에 해당하는 나이임에도 마지막까지 미친 성적을 내며 팀에 공헌했기에 그야말로 최고의 마무리라는 평. 본인도 대회 초부터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언급했다. 그렇게 마이클 펠프스는 영원한 수영계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수영황제
역대 최고의 수영선수이며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이다. 보통의 경우 웬만큼 뛰어난 선수들은 경쟁자가 있기 마련인데 펠프스는 워낙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어 흔한 라이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일컫는 말은 ‘수영황제’, 재미 삼아 부르는 별명은 ‘펠피시’(펠프스+피시). 스포츠계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신이 내린 뛰어난 재능과 함께 최고의 노력까지 겸비한 흔히 말하는 즐기면서 노력하는 사전적인 의미의 천재형 인간이다. 수영이라는 한 종목을 넘어서서 전 세계 역대 모든 운동선수들 가운데 전설적인 선수로서 탑 5 안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통산 올림픽 커리어로는 금메달 23개 은 3개 동 2개로 합계 28개의 메달을 따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금메달 27개 은 6개 동 1개를 획득했다. 그리고, 세계 신기록을 39회 작성했으며, 기타 소소한 대회는 너무 많아서 집계 생략한다. 하도 메달을 많이 따서 올림픽 금메달 및 총 메달 개수가 독보적 1위이다. 어느 정도냐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한 206개국 중 170개 국가보다 통산 더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육상계 일인자인 우사인 볼트와 함께 21세기 초반 올림픽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또한, 개인전 금메달 13개는 고대 올림픽까지 포함해서 현존 올림픽 최고 기록이다. IOC에 따르면 이전까지 개인전 금메달 최고 기록은 12개를 기록한 로도스의 레오니다스(Leonidas of Rhodes)로, 기원전 152년에 세운 기록인데, 이를 거의 2천 년이나 지나서 경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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