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펠프스 이전에 마크 스피츠가 있었다. 스피츠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수영 7관왕에 오르며 미국을 달아오르게 한 영웅이었다. 펠프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8관왕에 오르며 이 기록을 깰 때까지, 36년간 스피츠는 세계 수영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혔다.
펠프스가 자신의 기록을 넘어서던 순간, 그는 디트로이트에서 아들이 출전한 농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 NBC가 두 수영 황제를 영상 통화로 연결했을 때, 성격이 까칠하기로 유명했던 스피츠는 이례적인 칭찬을 건넸다. “지금 막 내 마음속에 떠오른 말은 이것이다.
영웅적인 한 편의 서사시. 바로 지금 펠프스가 이룬 일이다.” 하지만 스피츠가 해낸 일도 분명 그에 못지않았다. 스피츠는 이후 “만약 내가 출전했을 때 자유형 50m가 있었다면 나도 8관왕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 어린 시절부터 '수영신동'
스피츠는 유대인이었다. 1950년 2월 10일 캘리포니아주 머데스토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하와이 호놀룰루로 이주했다. 와이키키 해변이 스피츠에게 ‘물’의 즐거움을 처음 알려준 장소인 셈. 여섯 살 때 새크라멘토로 돌아와 처음 제대로 수영을 배운 그는 아홉 살 때 아든 힐스 수영 클럽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열네 살 때 산타클라라의 한 수영 클럽에서 조지 헤인즈 코치를 만나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걸었다. 경기에 출전한 이듬해, 그는 이스라엘에서 열린 한 국제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66년에는 16세의 나이로 국립 대회 접영 100m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그리고 1년 후에는 자유형 400m에서 4분 10초 60으로 처음 세계 신기록을 작성한다. 그야말로 ‘수영 황제’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의 적수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2. 1968년 멕시코 올림픽:절치부심의 시작
스피츠는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로 유명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스피츠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자신했다. “이번 대회에서 최소한 금메달 6개를 따오겠다. 아마 나는 올림픽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될 것이다.” 아들을 수영의 세계로 인도했던 스피츠의 아버지도 그를 부채질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것도 세계 신기록으로”라고 아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는 호언장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금메달을 ‘고작’ 2개밖에 따지 못한 것이다. 그것도 개인 종목 우승이 아니라 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춘 400m 계영과 400m 혼계영의 금메달이었다. 개인 종목에서는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목에 걸고 말았다.
첫 올림픽에서 이 정도면 무난한 성적. 그러나 수영 영웅의 탄생을 기대했던 미국인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러니 당사자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만해 보일 정도로 패기가 넘쳤던 그가 “앞으로는 그 어떤 장담도 예측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수영에만 전념하겠다”며 한 발 물러났다.
스피츠는 멕시코에서 돌아온 후 인디애나 대학에 입학했고, 수영팀 주장을 맡아 모교를 미국 대학수영선수권 3연패로 이끌었다. 키 182cm, 몸무게 77kg라는 체격 조건은 요즘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작은 편에 속하지만, 당시 선수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좋은 하드웨어로 평가받았다. 그가 대학 시절 자유형과 접영에서 세운 세계 신기록의 수만 해도 무려 28개에 달했다.
물론 그 사이 스피츠의 머릿속에는 늘 1972년 뮌헨 올림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멕시코에서의 패배감을 다시 맛보지 않기 위해 날마다 4~5시간씩 고된 훈련을 거듭했다. 원래 재능과 기량이 탁월한 데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투지까지 더해졌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뮌헨 올림픽을 앞두고 이전과 달리 말을 아꼈다. 섣불리 자신의 성적을 예상하지 않았다. 미디어가 “이번에는 금메달을 몇 개를 예상하느냐”고 물어도 말없는 미소로 일관할 뿐. 수영 전문가들이 스피츠의 금메달 수를 7개(개인 종목 3개, 계주 4개)로 점칠 때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3. 금메달 7개와 세계기록 5개, 뮌헨에서 탄생한 수영영웅
대신 몸으로 보여줬다. 1972년 8월 28일, 그가 올림픽에서 출전한 첫 종목은 접영 200m였다. 2분07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첫 금메달을 땄다. 2위와 무려 2초를 앞서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스피츠는 같은 날 오후 400m 계주에 미국 팀 주장으로 나서 역시 세계 기록으로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음 날, 세 번째 경기인 200m 자유형에서는 멕시코 대회 금메달리스트인 마이크 웬덴(호주)과 팀 동료 스티브 젠더가 라이벌로 꼽혔다. 실제로 스피츠는 레이스 중반까지 젠더에게 뒤졌다.
하지만 100m 지점부터 젠더가 뒤로 처지기 시작했고, 스피츠는 1분52초27로 결국 우승했다. 이어진 100m 접영과 800m 계영에서도 잇따라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 그는 다섯 개의 금메달과 네 개의 세계 신기록을 이미 손에 쥐었다.
스피츠는 400m 혼계영마저 우승하면서 결국 멕시코 올림픽 전에 약속했던 금메달 6개를 목에 걸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자유형 100m에 출전하지 않고 여기서 만족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스피츠가 레이스를 포기하려 한다는 소문도 이미 퍼졌다. 하지만 그와 함께 올림픽을 준비했던 셔먼 샤보 코치가 강하게 등을 떠밀었다. “마지막 레이스를 포기하면 박살 내겠다.” 스피츠는 결국 자유형 100m에도 출전했다.
다섯 번째 세계 신기록, 그리고 일곱 번째 금메달. 사상 첫 올림픽 7관왕의 위업을 이룩한 것이다. 스피츠가 7관왕에 오르기 전까지, 단일 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따낸 최다 금메달 수는 5개였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의 안토 하이(미국·체조)와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의 네도 나디(이탈리아·펜싱), 윌리스 리(미국·사격), 파보 누르미(핀란드·육상) 등이 보유하던 기록이다.
따라서 스피츠의 7관왕은 세계 스포츠계를 뒤흔들 만큼 압도적인 성과였다. 심지어 변변한 라이벌조차 없었다. 가장 근소한 기록차로 우승했던 자유형 100m에서조차 2위보다 0.43초나 빨리 들어왔을 정도였다. 이때 은메달에 그쳐 스피츠의 일곱 번째 금메달 획득을 지켜본 해브텐리크는 “스피츠의 신체 조건은 수영에 적합하다.
키에 비해 다리가 매우 길고, 그 다리를 쭉 뻗어 보통 선수들보다 15cm 정도 길게 물을 차냈다. 다리도 바지를 입었을 때 옆줄이 휘어질 정도로 활처럼 굽었다. 그래서인지 다리의 탄력이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찼다”라고 부러워했다.
뮌헨 올림픽에서 그의 유일한 불운이 있다면, 7관왕에 오른 다음날 이스라엘 선수들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돼 전원 피살당한 사건이 터진 일이다. 유대인인 스피츠는 영광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곧바로 미국으로 송환됐다.
4. CF스타 그리고 마지막 도전
뮌헨 올림픽을 마친 스피츠는 전공인 치과의사의 길과 현역 연장의 길 사이에서 갈등했다. 하지만 스피츠는 제 3의 선택을 했다. 바로 ‘돈과 명성’이었다. 콧수염을 기르고 수영모를 쓰지 않은 채 경기에 나섰던 그는 면도기, 헤어드라이어, 우유, 시계 등 수많은 회사의 광고에 출연했다.
수영과는 관련도 없는 아디다스 운동화를 들고 공식석상에 나타나기도 했다. 또 7개의 금메달을 모두 목에 걸고 사진을 찍는 조건으로 한 언론사에게 거액을 받았다.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밥 호프와 함께 TV 프로그램에서 코미디를 선보이거나 영화에 출연하는 일도 잦았다. 한 마디로 ‘준 연예인’이 된 것. 하지만 지나친 중복 출연과 과도한 미디어 노출로 금세 가치가 떨어졌다. 한때 많은 돈을 벌었지만 롱런은 못했다.
대신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년 만에 올림픽에 다시 출전하겠다며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42세의 나이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수영장에서 맹훈련을 거듭했다.
가장 기록 갱신 페이스가 느렸던 100m 접영이 그의 도전 종목. 그러나 역시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수많은 언론과 팬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끝내 올림픽 예선 출전 커트라인인 55.59초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수영장 밖으로 물러난 그는 최근 미국 스포츠계의 거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자신의 후계자나 다름없는 펠프스에 대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6개는 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4.11.22 - [수영 정보] - 수영의 전설: 마이클 펠프스의 생애와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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